"자기주도학습 핵심은 시간관리능력… 처음엔 엄마가 도와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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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최고관리자
- 작성일 : 15-08-25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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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잘 키운 교사 23명의 초등생 교육 노하우
초등 1학년 자녀를 둔 워킹맘 A씨는 개학을 앞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이의 방학숙제를 해줄 것이냐, 말 것이냐.’ 지식산업 분야의 중간간부인 그는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뚜렷한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입학 후 보낸 첫 학기는 가히 참담했다. “숙제로 그림 그리기가 나왔더라고요. 스스로 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속이 터져도 보고만 있었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엄마들이 그려준 폼 나는 그림들이 죄다 상을 받았더라고요. 독후감 대회, 미술대회 가릴 것 없이 우리 애만 엉망진창, 뒷전이었죠.” 이제 학교생활을 처음 시작한 아이에게 이렇게 좌절만 줘도 될까, 엄마가 좀 개입하더라도 동기부여를 해주는 게 나은 것 아닐까 A씨는 고민하고 있다.
10년차 초등교사가 자녀들을 잘 키워낸 23인의 선배교사들을 인터뷰해 ‘성공한 교사엄마들의 자녀교육 노하우’를 모은 책이 최근 발간됐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교단경력을 합치면 무려 500년 ‘유능한 초등교사는 자신의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는가’(알투스 발행)가 제목이다. 책을 쓴 이정원(33) 경남 창원시 호계초 교사에게 엄마들끼리 모여 아무리 논의를 해봐야 답도 안 나오는 문제들을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500년 경험에서 추출한 명쾌한 답변들을 Q&A로 정리한다.
이정원(33) 씨.
-자기주도학습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아예 학습 자체가 되지 않는다.
“자기주도학습이 ‘아이가 모든 것을 스스로, 혼자, 알아서 잘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작은 엄마주도학습이지만 점점 자기주도학습으로 옮겨와야 한다. 자기주도학습의 첫걸음은 아이 스스로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부모와 교사의 조력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자기주도학습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결국 시간 관리능력이다. 시간을 통으로 주기보다는 잘게 쪼개어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좋다. 쉬는 시간 10분이 주어진다면, ‘화장실 다녀와서 미리 책 놓기’보다는 ‘복습 2분, 화장실 3분, 놀이 3~4분, 예습 1분’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제안해주는 것이 좋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정서적 안정과 동기부여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효율적인 자기주도학습이 지속될 수 없으므로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학습과 관련해 아이의 선택을 어느 정도까지 존중해야 할까? 그림대회 출전도 “싫어요”, 영어학원도 “싫어요”, 다 싫다고 한다.
“아이가 그림에도, 음악에도, 외국어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면 부모님부터 반성해봐야 한다. 아이가 수준에 맞는 재미있는 미술 작품이나 디자인이 잘 된 물건을 감상한 적이 있었다면 저절로 관심이 생겼을 것이다. 음악에 관심이 없다면 난타공연을 같이 보러 간다든지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가서 라이브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상황과 문화에 노출시켜줘야 한다. 잔소리나 강요 없이 부모가 먼저 악기 연주를 즐겨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노력을 1년 이상 했는데도 아이가 모든 것에 흥미와 관심이 없다면 그때 다시 고민해도 늦지 않다.”
-방학 숙제나 대회 제출작품을 도와줘야 할까?
“이런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요즘은 학교에서 그린 작품에만 상을 준다든지 하는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다. 방학숙제가 엄마숙제임을 알기에 점점 축소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많다고 느껴질 수 있다. 다만 이때 ‘너희 학교는 무슨 쓸데없는 숙제를 이렇게 많이 내주니?’라고 말하기보다는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번거롭고 하기 싫은 일을 만날 때가 있어. 그럴 때도 엄마는 우리 딸이 현명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네’라고 말해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엄마가 방학 숙제를 도와줘서 상을 타면 아이의 자존감 및 자신감이 상승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향상된 자신감이라면 엄마의 애프터서비스가 스무 살 혹은 그 이상까지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이가 혼자서도 잘해보고 싶은 의욕이 있는데 아직 어려서 손재주가 부족하면 조금씩 도와주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아이는 나 몰라라 하는데 엄마가 주도해서 숙제를 마무리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다.”
-컴퓨터 게임은 언제 허용해야 하나?
“‘언제’를 논하는 것부터 생각을 바꿔보시기를 권해드린다. 이 질문에는 ‘우리 아이는 게임을 즐기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부디 이 땅의 학생들이 게임을 학습할 기회를 우연찮게 놓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게임에 빠진 학생들을 보면 대체로 성격이 급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다. 시험 문제를 풀 때도 문제를 꼼꼼하게 읽지 않고 대충 훑어봐서 틀리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게임으로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유익하게 채워 넣는 것이다. 빈 공터를 그냥 두면 잡초가 무성해진다. 그곳에 작물을 심어주고 잡초를 뽑아줘야 한다. 무조건 게임만 못하게 하기보다는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 넣을지에 대해 자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운동, 악기 연주, 보드게임, 바둑 등 아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도와야 조금 더 책임감을 갖고 수행할 것이다.”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르는데, 언제가 적당한 시기일까?
“마트폰은 최대한 늦게, 되도록 대학 진학 이후 갖는 게 좋다는 게 인터뷰한 선생님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안 사줘야 할 이유를 충분히 만들어서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 워킹맘이라 아이와 연락할 수단이 필요하다면 폴더폰으로 사주자. 스마트폰이 없으면 왕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들을 많이 하는데 기우다. 오히려 스마트폰이 신종 따돌림을 양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얌전하고 착해 보이던 여학생이 카톡방에서 친구들을 이간질시키고 그 내용을 캡처해서 다른 아이에게 옮기는 등 왕따 가해자의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시적으로 대화에서 소외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정말 불필요한 걱정이다. 어른도 절제하지 못하는 스마트폰을 아이 손에 쥐어주고 야한 동영상도 보지 말고, 게임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과욕이다. 전자책도 몰입도가 떨어져 권하지 않는다. 몇 분의 선배교사는 학부모들이 전자책을 보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필요하다는 아이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헌신(희생)하는 엄마보다 동행하는 엄마가 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초등학교 1~3학년이 최대의 고비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직장 다니던 엄마들도 이 시기를 잘 못 넘긴다. 하지만 아이는 5학년만 돼도 자기 세계가 생기고 주말이면 엄마보다 친구들과 놀고 싶어한다. 자녀교육에 있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물었을 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답한 존경하던 교감선생님이 계셨다. 자녀교육의 핵심은 ‘말로 가르치지 말고 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신 분이었다. 요즘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과거와 달리 엄마가 일하는 걸 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를 잘 넘기길 바란다.”
-초2 딸아이가 친구관계에서 벌어진 일을 너무 시시콜콜 선생님께 말씀드린다. 상담과 고자질의 경계는 어디일까?
“지속성 여부로 판단하면 될 것 같다. 일시적인 갈등이라면 아이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고민이 지속되거나 스트레스 강도가 커서 학교 가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힘든 교우관계는 빠른 시일 내에 담임 선생님께 자세히 설명을 해야 한다.”
-아이가 선생님께 예쁨 받았으면 좋겠다. 교사 입장에서 어떤 아이가 가장 예쁜가?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사소한 것 같지만, 매일 아침 웃는 얼굴로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다가오는 학생이 제일 예쁘다. 그만큼 인사가 익숙하지 않거나 하는 방법을 몰라서 혹은 쑥스러워서 잘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 조금 구체적으로는 ▦교우관계, 학교생활 등을 포함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긍정적인 학생 ▦자기 할 일을 스스로 열심히 하려는 학생 ▦자기 할 일을 끝내놓고 잘 못하는 친구를 내 일처럼 도와주는 학생이다. 결국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예의가 있고 긍정적인 학생이 가장 예쁘다는 얘기다. 문제 해결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기본적인 태도와 마인드가 긍정적이라면 교사가 도와주고 싶고 기특한 마음이 든다. 반면 문제 해결능력은 뛰어난데 자신보다 못한 친구를 우습게 보고 매사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이 교사는 가장 힘들다. 이런 부분은 교육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출처:한국일보 / 링크참조]